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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위생학 공부하기/치위생학 개론

치과위생사의 역사

by 홈쑤니 2023. 10. 11.

치위생사의 역사


 치과위생사제도는 미국에서 처음 만들어져 아직 채 100년도 경과하지 않았고, 우리나라의 경우는 이제 40여 년의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

치과위생사라는 명칭은 치과의료나 구강보건활동에 있어서 전문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직종이 필요하다는 인식 하에 만들어져 점차 발전되어 왔으며, 또한 새로운 전환기를 맞고 있는 바, 치과위생사제도가 어떻게 형성되고 교육되어 왔는지를 인식함으로써 치과위생사에 대해서 한층 더 이해를 도모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1. 치과위생사의 탄생

 치과위생사라는 명칭은 그리스 신화에서 유래된다. 아폴로(apollo) 신의 아들 에스쿨라피우스(aesculapius, 의학의 신)에게 건강의 여신으로 불리는 하이지아(hygeia)라는 딸이 있었으며, 기원 2세기경 이탈리아 의학자 갈레노스는 하이지아의 이름에서 건강의 상징으로 하이진(hygiene)이라는 명칭을 처음 사용하였다. Hygiene이 중국의 고서인 장자 중에 있는 위생이라는 말과 부합된 데서 일본의 나가요(조요)가 처음 '위생'이라는 말로 사용하였다. 우리나라는 일본의 영향을 받아 hygiene을 '위생'으로 hygienist는 '위생사'로, dental hygienist는 '치과위생사'로 부르게 되었다.

 미국에서 1819년에 출판된 '치아관리에 관한 실제적인 안내'에서 팜리(levi spear parmly)는 구강질병으로부터 치아와 치은을 보호하기 위하여 매일매일의 예방적 구강건강행위(칫솔질, 치실질, 치약의 사용)의 중요성을 강조하였으며, 그 당시부터 몇몇 치과의사들은 대중들에 대한 예방치료의 가치를 인식하기 시작했다.

 1845년 '미국치과학 저널'의 편집자는 예방치학을 경시하고 수술에 초점을 둔 물리적인 치과학을 비평하는 사설을 게재한 이래, 20세기에 이르러서는 많은 치과의사들이 환자들에게 예방적 구강건강보호방법을 제시하기에 이르렀다.

 1898년 필라델피아의 스미스(D.D. smith)의 Prophylaxis in Dentistry(치과에서의 예방처치)라는 논문에서는 치과진료 범위에 예방이라는 개념과 방법을 도입해야 할 필요성을 주장하였다.

 미국의 폰즈(A.C. Fones)는 적절한 구강건강관리 행위들을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것이 치아질병의 예방을 위한 결정적인 요소임을 인식하고 코네티컷에 있는 브리짓포트 공립학교에서 여성들에게 간단한 교육을 실시한 후 이러한 계획을 실현시킬 수 있도록 전개하였다. 공립학교에서 이러한 여성들의 역할은 예방적 치아보호와 칫솔질, 치실질, 영양, 공중위생에 대하여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것이었다. 이것이 치과위생사 교육의 시초였고, 폰즈가 개발한 직업적인 구강질병 예방전문가들은 오늘날 치과위생사라는 전문직으로 발달될 수 있는 기초가 되었다. 

 폰즈는 자신의 계획을 임상현장에서 실천하려고 부친의 진료소에서 일하고 있는 조카이자 조수인 뉴먼여사(Mrs. irene newman)에게 예방치과처치와 구강보건지도를 가르친 다음 환자에게 시행하도록 했다. 후에 그녀는 최초의 치과위생사가 되었다. 폰즈는 또한 브리지포트시의 학교치과의사이기도 했기 때문에 그곳에서도 뉴먼은 함께 활동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폰즈는 학교치과현장에서 뉴먼과 같은 사람들에 의한 예방처치를 확대하고자 1913년 11월 6일부터 진료실 한쪽에서 치과위생사의 조직적인 훈련을 개시하였다. 교육대상은 학교교사, 치과보조원, 간호원, 치과의사 부인 등 33명이었으며, 이중 27명이 교육과정을 수료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의 교육은 학교라기보다는 매주 월, 수, 금요일 밤에 2시간 정도 시행하는 강습회와 같은 것이었고 그곳에서는 6개월간에 걸쳐 해부학, 생리학, 세균 및 소독학, 두경부 해부학, 치아 해부 염증론, 치과병리학, X-선 취급법 및 진단학, 치과진료와 예방처치학, 영양화학, 소아치과학, 위생학과 같은 과목을 16명의 강사가 교육하였다. 그 후 코네티컷의 치과의사법에 '면허를 받은 치과의사는 치과위생사 자격이 있는 여자조를 채용할 수 있다'가 첨가됨으로 써 공식적으로 치과위생사가 인정받게 되었다.

 그리고 다른 지역에서는 '치과위생사는 치아의 노출면 및 유리 치은 연하에 부착된 석회침착물과 기타의 오물을 제거할 수 있다. 단 치아 및 구강조직의 질환에 대해서는 치료할 수 없다. 즉 치과위생사는 치과의사의 진료소 또는 치과의사 감독 아래 공공 또는 민간의 진료소에서만 치료할 수 있는 것으로 한다'라고 업무 범위를 규정하였다.  이때부터 1922년경까지 19개 주에서 치과위생사에 대해 법제화하였으며, 1923년에는 미국치과위생사협회가 설립되었고, 1927년에는 법인단체가 되었다. 1948년에는 처음으로 치과위생사 국가시험이 실시되었으며 36명이 합격하여 치과위생사 면허를 취득하였다. 폰즈는 몇몇 구강질병들의 예방처치요법으로서 구강청결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일반적으로 사용된 치과간호사(Dental Nurse)라는 명칭보다는 치과위생사(Dental Hygienist)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2. 한국 치과위생사의 탄생

 우리나라 치과위생사 제도가 처음 도입된 것은 1961년 당시 세브란스병원 치과과장이었던 지헌택 박사가 미국의 미시간대학교 치과대학에서 치위생과 교육과정을 관심 있게 살펴보고 귀국하여 본격적으로 준비를 한 후 1965년 3월에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부속 세브란스병원 의학기술과가 설립되면서 최초의 치과위생사 교육이 2년 과정으로 시작된 것이 그 시초이다.

 지헌택 박사의 치과위생사 제도 도입에 대한 끊임없는 노력으로 치과위생사교육이 실시될 수 있었으며, 그 뒤 1967년 최초로 4명의 수료자가 배출되었고, 1971년에 의료보조원법에 의해 최초의 면허시험이 실시되었으며, 1973년 2월 16일 의료보조원법이 폐지되고 의료기사법이 제정되면서 1974년에는 의료기사법에 의한 제1회 치과위생사 국가시험이 실시되어 11명의 치과위생사가 배출되었다. 1977년 12월에는 국민 구강보건을 향상하고 치위생교육의 연구발전을 도모하며 치과위생사의 권익보호와 윤리확립을 위한 목적으로 대한치과위생사협회가 창립되었고 1982년에는 사단법인체로 인정을 받게 되었다. 1986년에는 전국 각 지역의 보건소와 보건지소에 치과위생사가 일제히 배치되어 지역사회의 구강건강증진을 위한 다양한 사업을 전개하게 되었다. 

 치과위생사의 양적증가와 업무확장으로 인해 활동에 대한 법적인 근거마련을 위해 1996년 4월에는 치과위생사 업무범위가 명시된 의료기사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을 개정하게 되었다. 같은 해에 국민들의 구강건강증진 및 유지를 위한 정책을 마련하고 실행할 부서인 보건복지부 산하 구강보건과가 신설되어 국민들의 구강건강 수준의 향상을 도모하기 위한 구강 보건행정의 기틀이 마련되었다. 1999년부터는 국가적 차원에서 전국 각도와 광역시 보건소에서 시범학교구강보건실을 설치, 운영한 이래 매년 대상학교가 증가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공중구강보건현장에서의 치과위생사의 역할이 점점 활성화되어 왔다.